본문 바로가기

llyfrau

여행의 이유

여행의 이유 - 김영하

여행의 이유라.. 평범한 제목에 기행문도 아닌 것 같은데 계속 베스트셀러다. 역시 알쓸신잡 문인. 김영하의 글은 믿고 보는데(소설은 '아랑은 왜' 밖에 안 읽어봤지만)  게다가 여행 얘기면 무조건 재미있겠지 하고 역시나 재미있게 즐겁게 읽었다. 알쓸신잡을 즐겨봐서인가 책을 읽는 내내 김영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저자가 낭독해주는 느낌이랄까. 이분은 어째 말과 글이 똑같군.

여행은 설렌다. 현실이 좋건 싫건 잠시 떨어져 있을 수 있다는 해방감에 좋다. 고되도 좋다. 여행은 온전히 현재에 집중할 수 있다. 하지만 여행이 현실이라면, 여행을 반복하는 것이 삶이라면 어떨까.  현실과 유리될 수 있음에 그 고됨을 기꺼이 받아들이는 것이 여행일진대 과연 좋을까?(한번 어떨지 해보고 싶긴하다. 1년세계일주라면 얼추 비슷하려나.) 김영하는 유명 소설가니까 비슷한 삶을 살아낼 수 있다고 한다. 뉴욕에서 2년, 부산에서 또 몇 년. 게다가 군인이신 아버지 덕분에 유랑하는 삶을 살았다고 하는데 인생이 여행이었던듯. 

재미있는 에피소드가 많다. 중국비자 없이 상해에 가서 공항에서 추방당한 일에서부터 꼬리를 물고 시작된 운동권 학창시절 경찰관과 동행했던 중공여행의 기억들. 알쓸신잡 촬영때 여행지로 던져져 앞으로 프로그램이 어떻게 될지 아무도 모르는 기묘한 느낌들.

올해는 가족여행을 건너 뛸까 했는데 안되겠다. 어디든 가서 가족들과 하루종일 복작복작,우당탕탕 현재에 집중하며 보내다 와야겠다. 어디가 좋을까나.


인생과 여행은 그래서 신비롭다. 설령 우리가 원하던 것을 얻지 못하고, 예상치 못한 실패와 시련, 좌절을 겪는다 해도, 우리가 그 안에서 얼마든지 기쁨을 찾아내고 행복을 누리며 깊은 깨달음을 얻기 때문이다. (24p)
"평범한 회사원? 그런 인물은 없어." 모든 인간은 다 다르며, 자세히 들여다보면 어딘가 조금씩은 다 이상하다. 작가로 산다는 것은 바로 그 '다름'과 '이상함'을 끝까지 추적해 생생한 캐릭터로 만드는 것이다. (57p)
"고통은 수시로 사람들이 사는 장소와 연관되고, 그래서 그들은 여행의 필요성을 느끼는데, 그것은 행복을 찾기위해서가 아니라 자신들의 슬픔을 몽땅 흡수한 것처럼 보이는 물건들로부터 달아나기 위해서다." (데이비드 실즈, 64p)
발상은 무게가 없다. 지혜도 그렇다. 기술도 마찬가지. 그래서 이런 무형의 자산을 가진 사람은 어딘가에 붙들려 있을 필요가 없다. 자신을 필요로 하는 이들이 있는 곳으로 이동하는 것이 먹고 살기에도 유리했다. (77p)          (아 내 직업은 여행하기 좋은 직업이구나. 영어를 잘하면 움직이기 더 쉽겠다.)
작가는 모국어에 묶인다. (78p)
스토아학파의 철학자들이 거듭하여 말한 것처럼 미래에 대한 근심과 과거에 대한 후회를 줄이고 현재에 집중할 때, 인간은 흔들림 없는 평온의 상태에 근접한다. 여행은 우리를 오직 현재에만 머물게 하고, 일상의 근심과 후회, 미련으로부터 해방시킨다. (110p)
환대는 이렇게 순환하면서 세상을 좀더 나은 곳으로 만들고 그럴 때 진정한 가치가 있다. (147p)
여행자는 낯선 존재이며, 그러므로 더 자주, 명백하게 분류되고 기호화된다..여행자는 스스로를 어떻게 생각하는 상관없이, 결국은 '아무것도 아닌자', 노바디일 뿐이다.(155p)
일상으로 돌아올 때가 아니라 여행을 시작할 때 마음이 더 편해지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나와 같은 부류의 인간일 것이다. 이번 생은 떠돌면서 살 운명이라는 것. 귀환의 원점 같은 것은 없다는 것. 이제는 그걸 받아들이기로 한다. (207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