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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이지 유신은 어떻게 가능했는가

메이지 유신은 어떻게 가능했는가 - 박훈

지리상의 발견 이후 대항해시대로 돌입한 서구는 자본, 과학기술과 무력을 앞세워 세계를 누비며 곳곳에 자국의 깃발을 꽂는 식민지를 건설한다. 결국 식민지로부터 쌓은 막대한 부를 바탕으로 제국주의 시대로 나아가게 되는데 동아시아에서 그 제국주의 열강에 동참한 나라가 있으니 일본이다. 이른바 근대화에 성공한 것인데 19세기에 산업혁명과 헌법,의회를 모두 갖춘 나라는 미국과 서유럽 몇 개국을 제외하고는 일본이 유일하다고 한다. 구주제국에 가깝게 위치한 러시아나 오스만투르크도 실패했고..청, 조선은 말해 무엇하랴. 결국 이제와서 보면 우리가 못했던것이 아니라 일본이 잘 대처했던 거라고 할 수 있겠다.

19세기로 돌아가보면 그 당시 일본의 역사는 출몰하는 서양세력의 압박에 좌충우돌 하던 에도막부가 결국 웅번들에 의해 박살나고, 천황에게 모든 권력을 넘겨주는 대정봉환을 겪은 후 메이지유신이라는 위로부터의 개혁을 이뤄내어 근대국가로 나아가고 청일전쟁, 러일전쟁의 승리로 제국주의국가로 발돋움하게 된다.

자, 그렇다면 일본은 어떻게 이런 개혁을 이뤄냈을까.

일단 에도시대부터 근대화의 맹아가 자라고 있었다고 설명한다. 참근교대제로 다이묘들이 에도에 정기적으로 왔다갔다 하면서 상업이 엄청나게 발달하고, 에도에 독신가구들이 많이 생기면서 도시화도 잘 이뤄졌다. 쇄국을 하기는 했지만 나가사키에 숨통을 틔워 놓아 네덜란드로부터 세계가 돌아가는 상황을 어느정도 파악해 놓고 있기도 했다. 결국 조슈, 사쓰마번 등에 의해 몰락하기는 했지만 그렇게 막장은 아니었다. 특이한 것은 세계정세를 과장되게 인식했다는 것. 그래서 위기의식이 강했다는 것이다. 그 입수한 정보를 바탕으로 나름의 틀에서 세계판세를 읽으려고 노렸했던 것 같다. (세계구급 전국시대로 시대를 인식하고 일본도 (마치 전국7웅같이) 한자리를 차지하자고 주장한 세력도. 일본은 제나라 옆에 연라라 포지션 정도로.) 그래서, 신속하게 새로운 서구문물들을 받아들이고 소화해낼 수 있었다. 그래야만 했겠지. 외국을 배척하는 양이를 주장하는 세력들도 실질적으로 배척하자는 것이 아니라 명분 이었던 것 이라고. (물론 일부 진짜 양이를 주장하는 세력도 있었지만.) 실제로 양이에서 개화로 포지션을 바꾸곤 한다.

특이했고 처음 접한 것은 유학으로 무장한 신진 사대부세력의 등장이 근대화를 이뤄냈다는 이야기다. 조선은 유학자가 차일듯이 많은데? 대표적은 구세력 아닌가? 애초에 일본은 명, 조선같은 유학의 나라가 아니었고 사무라이, 막부로 대표되는 병영국가였다고. 하지만 태평성대가 계속되자 사무라이들은 공무원같이 변해갔다. 칼을 찬 행정직원. 다만 조선 사대부같이 정치를 한 것은 아니고, 실무를 했다. 정치는 쇼군 밑에 로주 같은 가신들이 속닥속닥 진행하고. 정치의 실무자들이 가신이므로 대의 명분이 있는 것이 아니라 뭔가 실용적으로 국사를 처리했었던 듯. 그러던 와중에 엘리트들을 중심으로 유학이 퍼지고, 그들이 정치적 목소리를 내면서 막부는 흔들리고..결국 개국+천황친정을 내세워서 메이지 유신 성공. 조선은 사대부들이 이미 기득권이었던데 반해 일본은 새로운 세력이었던 것. 그리고, 권위가 막부/천황으로 분리되어 새로운 세력은 다른 권위를 내세울 수 있었던 것이 좀 더 용이하게 개혁을 이뤄낼 수 있던 것이 아닌가 싶다. 뭔가 정도전으로 대표되는 조선초기 분위기려나. 

이 시기의 일본 역사는 흥미진진하다. 뭔가 다이나믹하고 으샤으샤하는 기운이 느껴진다. 똑똑한 사람들이 제대로 된 의사결정을 해나가는 모습을 보면 우리로써는 아주 씁쓸하긴 하지만 보는 맛이 있다. 이 기운도 20세기 중반쯤 되면 엉망진창이 되기는 한다.(고소하다고 느껴지지만 그 피해는 우리가 더 많이 보았다는 것도 참 씁쓸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