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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lyfrau

우아하고 호쾌한 여자축구

우아하고 호쾌한 여자축구 : 한팀이 된 여자들, 피치에 서다 - 김혼비

'아무튼,술'로 나에게 엄청나게 즐거운 시간을 선사했던 김혼비작가의 출세작 '우아하고 호쾌한 여자 축구'. 도저히 안 읽을 도리가 없지 않은가. 다른 책 다 제쳐두고 택배가 도착하자마자 읽기 시작해서 호다닥 다 읽어버렸다. 이렇게 재미있는 글은 아껴가며 읽어야 하는데 아쉬운 감이 있지만. 또 책을 내주시지 않을까.

'우아하고 감상적인 일본야구'란 일본소설이 있다. 대학선배가 특이하게 재미있다고 해서 읽어봤던 책인데 오래전이라 내용은 기억이 잘 안나지만 뭔가 사소설 같기도 하고 SF 같기도하니 영 독특했고, 분명 야구에 관한 소설은 아니었다. (분위기가 일본소설임에는 분명했다.)

이 책은  그 '우아하고 감상적인 일본야구'를 반사적으로 떠오르게 하지만 정직하게 '여자축구'에 대한 이야기다. 그것도 아마추어 동호회에서 축구하는 이야기. 허허 참 그런 소재로 그렇게 즐거운 에세이가 나올 수 있다니. 

그냥 막 너무 재미있다. 개그감도 아주 훌륭하지만 이야기를 촘촘하게 엮는 솜씨도 일품이고, 인물들도 하나같이 생생하고 귀엽다. 글의 결이 '아무튼,술'과는 또 다르다. 아니 그렇게 술독에 빠져사는 사람같았는데 이렇게 클럽축구에 열심이었다니? 역시 사람은 한면만 봐서는 안되는 법.

경향신문에선가 컬럼을 연재하는 것 같은데 다음 책을 기대해본다.

이 분 필명이었구나. 축구광 소설가 닉혼비에서 따온거였군. 그러게, 혼비란 이름을 지어줄 부모는 있을리 만무한데.

 


그런데도 세상에는 축구를 하는 여자들이 있다. 나는 저런 철통 수비를 뚫고 축구를 선택한, 특히 성인이 된 이후 처음으로 축구를 시작한 여자들의 특별한 계기들이 항상 궁금했다. 대체 무엇이 그녀들로 하여금 이 우악스럽고 별 도움도 안 되면서 접근성까지 낮은 운동을 하게 만들었는가.
축구 팬이라는 정체성이 노출되는 순간부터 좋지 못한 상황에 휘말려 드는 경우가 제법 있기 때문이다. 대개 둘 중 하나다. 귀찮아지거나 불쾌해지거나.
하지만 어떤 본격은 다른 본격에 의해 갱신되기 전까지만 본격으로서 존재한다. 그보다 더 본격적인 것이 찾아오면 순식간에 '안본격'인 것으로 성질이 바뀌는 것이다.
거의 시공을 초월하기 직전의 미션처럼 보이는 '찰나의 틈새'를 만들어내는 것이 오프더볼의 묘미인 것이다.
이리하여 올가을, 나는 단발머리와 영원한 작별을 고했고 대신에 종아리 알을 얻게 되었다. 
일 나가고 아이 돌보는 시간을 쪼개고 쪼개 어떻게든 일상에 축구를 밀어 넣는 이 여정 자체가 어떻게든 골대 안으로 골을 밀어 넣어야 하는 하나의 축구 경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