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llyfrau

뉴턴의 아틀리에

뉴턴의 아틀리에 : 과학과 예술, 두  시선의 다양한 관계 맺기 - 김상욱, 유지원

물리학자 김상욱과 디자이너 유지원의 같은 주제로 글 쓰기. 정재승, 진중권의 크로스가 연상되는 이 기획물이 나온다는 얘기를 들었을때 오호 재미있겠군, 기대되는걸, 언제나오려나? 그랬다. 김상욱 교수님의 글도 좋아하고, 유지원의 전작 글자풍경도 즐겁게 읽어서였다. 그리고 잊고 지내다 서점에서 읽어내려갔는데-그냥 그랬다. 왜인지는 잘 모르겠다. 그냥 글들이 맘에 안와닿았다. 그냥 다들 맞지않는 옷을 입고, 억지로 글을 쓴다는 느낌이었다. 

암튼 장바구니에서 뺐다 넣었다를 반복하다가 결국 궁금해서 사서 읽었는데 생각보다는 재미있더라. 컬럼을 엮은거여서 인지 어떤건 쥐어짜서 나온것 같고, 어떤건 휘리릭 써내려간 것 같다.  뒤로 갈수록 힘이 빠지는 것 같기도 하고ㅎㅎ 내가 부족한 탓이겠지.

상당히 만듦새에 공을 들인 책이다. 유지원의 글과 김상욱의 글이 폰트가 다르고,  그림을 지시하는 방식도 독특하다. 일단 제목도 멋을 많이 부린것 같은 느낌.

결국 예술과 과학은 서로 보완하는 관계이다. 예술가의 직관과 과학자의 추론이 결합했을 때 도그마에 빠지지 않고 다른 사고를 할 수 있다. 유연한 사고, 정말 중요하다. 내가 틀릴 수도 있다는 걸 염두에 두고 계획하고, 실행하자. (이거 아무말대잔치)

 


"우주는 수학이라는 언어로 쓰여 있다"
근대 물리학은 우주의 언어인 수학을 재발견하며 시작되었다...물리학자들은 수학의 도움으로 자연을 한 치의 모호함 없이 기술할 수 있다...수학으로 기술된 과학 이론을 일상 언어로 이야기할 떄는 정신 단단히 차려야 한다...언어로 모든 것을 다 표현 할 수 없다는 것은 왜 수학과 예술이 존재하는지 설명해 준다. 우주는 인간의 언어와 이해 방식이 아니라 수학과 물리학의 방식으로 기술된다. 인간은 수학과 언어로 기술할 수 없는 것을 예술로 표현한다...인간이 언어로 할 수 없는 많은 것들을 예술로 할 수 있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진짜 놀랄 일은 우리가 언어를 가지고 이 정도로 소통할 수 있다는 사실이다.
'숙성'이라는 오묘한 과정을 거친다는 점에서도, 목마름에 갈망하는 육신과 영혼을 적셔준다는 점에서도, 포도주와 책은 서로 닮았다. 독일어에서는 '책을 읽는 일'과 '포도를 수확하는 일'에 '레젠(lesen)'이라는 같은 단어를 쓴다.
정신이 결연하게 낯선 언어와 낯선 상황을 호흡할때, 간혹 관념의 반짝이는 본연적 빛을 보는 행운이 찾아온다.
한국인인 내게 고대 그리스보다도 더 낯선 사고체계가 동아시아의 전통 수학 속에 있었다...서구의 공간이 1차원 선에서 출발한다면, 동아시아의 공간은 차원이 하나 더 높고 보다 직관적인 2차원 정사각형 단위에서 출발한다...서구의 알파벳들이 1차원 선 위에 가지런히 놓이는 방향으로 진행되었다면, 동아시아 글지들은 한자든 한글이든 2차원 면적을 한 칸씩 채워 갔다. 큰 글자 하나(1^2)의 공간에는 작은 글자 네개(2^2)가 들어갔다.
초성,중성,종성의 음소로 쪼개는 데까지 나아간 한글이 다시 모아쓰기를 하며 정사각형의 음절 공간으로 돌아간 이유도 이런 문화 전반에 걸친 인지 단위와 관련이 있다.
그리스 문명의 가장 위대한 유산은 사실 파르테논이라는 건축물이 아니라 '개인으로서의 인간'이라는 개념이다.
보는 행위가 대상의 상태에 영향을 준다.
인간의 감각을 믿지 마라. 감각에 의존하여 구축된 의식은 더욱 믿지말지어다. 과학이 일관되게 이야기하는 바다. 인간의 감각은 더 정교한 도구의 검증을 받아야 하며, 인간의 의식은 더 정확한 수학의 확인을 받아야 한다.
보이는 대로 그린 그림은 아이러니컬하게도 더욱 추상적이 되었다.
인생은 짧고 예술은 길다. 하지만 생명은 영원하다.
종교를 가진다는 것은 인류의 과학과 지성으로도 다 설명하지 못하는 현상들이 우주와 자연에 잔존함을 기꺼이 인정하는 겸양의 마음일지도 모르겠다.
근대 이전 미의 법칙을 뛰어넘은 현대미술은 물리학의 경계조차 뛰어넘을 수 있지 않을까. 그래서 내가 현대미술을 좋아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인간적'으 놀랍게도 '인위'보다는 '자연'에 가깝다.
칸딘스키는 음악을 보여 주려 했다(!)...양자역학에서는 파동을 보면 결이 어긋난다.
사람이 새와 함께 사는 법은 새장에 새를 가두는 것이 아니라 마당에 풀과 나무를 키우는 일다. 모든 생명이 그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