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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herzo

당신도 언젠가는 잘될 것이다.

정성일의 박찬욱에 관한 글이다.
그는 10년을 기다렸다.
힘들고 스트레스 받을때 이 글을 읽고 힘을 좀 내야겠다.
(박찬욱네 집이 워낙 부자라 별로 휘둘리지 않았을거라는 별개로..)

나도 내가 언젠가는 잘될거라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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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번째 영화 - 정성일

“제가 이 상을 주게 되어서 너무나 기쁩니다. 심사위원대상은 박찬욱의 ‘올드 보이’!”
올해 칸영화제에서 심사위원장이었던 쿠엔틴 타란티노는 흥분한 듯이 벌떡 일어나서 소리 쳤다. 잘 알려진 것처럼 타란티노는 올해 칸영화제가 시작되기 전부터 공공연하게 ‘올드 보이’를 지지했고, 기대보다 큰 영광을 안고 박찬욱 감독은 한국에 돌아왔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영화가 최민식에게 남우주연상을 안겨줄 것이라고 생각했고, 박찬욱 자신도 그렇게 생각했던 것 같다. 박찬욱은 그런 사람이다. 그게 좋은 건지 아니면 나쁜 건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는 자기에게 행운이 돌아오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쪽이다. 혹은 행운은 항상 다른 사람의 몫이라고 말하는 쪽을 택한다.

박찬욱을 내가 처음 만난 것은 군대를 제대하고 난 다음이다. 그때 그는 막 대학교에 입학한 새내기였고, 세간에 알려진 것과 달리 그렇게 영화를 좋아하지는 않았다. 그의 동기 학번들이 대부분 그러했다. 왜냐하면 시대는 이제 막 1980년대, 화염병과 걸개 그림, 격문과 페퍼 포그의 아비규환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매우 조용한 사람이었고, 그의 친구들이 영화책을 보고 동서고금의 영화에 관해서 거품을 물고 이야기할 때에도 그냥 가만히 있었다. 그는 그렇게 눈에 드러나 보이지 않는 편이었다.

사실 그가 영화를 만들겠다고 현장에 갔을 때에도 다들 그가 영화 평론가가 될 줄 알았는데 매우 의외의 결정이라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그는 글을 참 잘 썼고, 반면에 남들과 함께 하는 일은 항상 서툴렀기 때문이다.

그는 이장호 감독의 연출부를 한 다음, ‘엽기적인 그녀’로 잘 알려진 곽재용 감독의 ‘비오는 날의 수채화’에서 조감독을 했다. 그런 다음 아주 나쁜 조건으로 첫 번째 영화 ‘달은… 해가 꾸는 꿈’을 만들었다. 매우 우울하고 이상한 멜랑코리가 감도는 이 영화는 흥행에서 완전히 실패했다. 1990년의 일이다. 그런 다음 그는 거의 지옥 같은 10년을 통과했다.

그가 준비하는 영화들은 온갖 이상한 이유가 원인이 되어서 모두 엎어 졌다. 심지어 ‘테러리스트’는 그가 시나리오까지 모두 쓴 다음 여차저차한 이유로 감독이 바뀌었다. 이런 경우 충무로에서는 ‘피를 토하고 죽을만한 일’이라고 부른다. 절치부심 끝에 두 번째 영화 ‘삼인조’를 만들었지만 끔찍할 정도의 실패를 다시 경험했다. 모두들 그는 여기서 끝났다고 생각했다.

실제로 대부분 여기서 끝난다. 그러나 그는 계속 기회를 만들기 위해서 다시 준비하고 또 준비했다. 그런 다음 ‘공동경비구역 JSA’로 거의 기적처럼 살아 돌아왔다. 이 영화는 10년 만의 세 번째 영화이다. 아무 기약 없이 10년을 버티는 것은 정말 쉬운 일이 아니다. 대부분은 포기하거나 인간이 망가진다.

그 해 부산영화제에 나는 홍콩영화 세미나에 참석하기 위해 초대받았다. 파티가 끝나고 숙소로 돌아가기 위해 해운대 거리를 걸어가고 있는데 맞은편에서 술에 약간 취한 박찬욱이 걸어오고 있었다. 나는 후배라 할지라도 성공한 ‘직후’의 지인은 안 만나는 편이 좋다고 생각하는 편이기 때문에 의례적인 인사만을 하고 갈 생각이었다.

솔직히 말하면 실패한 쪽보다는 성공한 쪽이 더 인간을 변하게 만든다고 나는 생각한다. 그래서 실망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그 자리를 피하고 싶었다. 그의 영화는 그때 최고의 흥행작 ‘쉬리’를 물리치고 전국 700만 명의 관객을 향해서 달려가고 있었다.

내가 “축하해요, 고진감래네”라고 말했더니 박찬욱은 취한 목소리로 “아뇨, 그런 말은 제작자한테 하시고요. 전요, 형이 제 영화를 칭찬해 주셔서 너무 기뻤어요. 형이 제 영화 칭찬한 거 처음인 거 아세요?”라고 대답했다.


그 표정을 보았을 때 고맙게도 그 말은 진심이었다. 그래서 내친 김에 그냥 한마디 더 물어보았다. “만일 이번 영화도 잘 안 되었으면 어쩔 뻔했어?” 아무리 술김이었지만 그 말을 던져놓고 나는 아차 싶었다. 그건 정말 해서는 안 되는 질문이었다. 그러나 물은 엎질러졌고, 그 물은 다시 담을 수 없었다.


그런데 박찬욱은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이 대답했다. “그럼 네 번째 영화를 다시 준비해야지요, 뭐. 세 번째 영화를 만들었으니까 다음 영화는 네 번째 영화잖아요. 기다리는 게 지겹긴 하지만 그래도 아마 또 기회가 오겠지요, 뭐”

나는 박찬욱의 그 낙천주의를 사랑한다. 그는 세상의 긍정적인 힘을 믿는 쪽을 택한 것이다. 그래서 하여튼 잘될 것이라고 믿는다. 세상은 결국 대부분의 노력을 실패로 팽개친다. 그래서 사람들은 증오와 분노를 배운다. 혹은 포기를 희망보다 먼저 익힌다.

하지만 박찬욱은 그냥 세상을 낙관한다. 그리고 언젠가 잘될 것이라고 말한다. 당신도 언젠가는 잘될 것이다. 다만 지금 잘 안 될 뿐이다. 그러니 포기하면 안 된다. 나도 언젠가 당신이 잘될 것이라고 믿는다.